솔직히 저는 7살에 병원 침대에서 옆 친구가 사라졌을 때 그게 죽음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어디론가 갔다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퇴원하는 날 이유 없이 눈물이 났던 건, 제 몸이 먼저 이별을 알았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선천성 심장병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임세원 교수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개정 증보판을 접하며 다시 떠올랐습니다. 2024년 기준 국내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우울증 환자의 자살 시도율은 일반인보다 20배 이상 높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이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였던 임세원 교수가 자신의 극심한 우울증 경험을 통해 환자들의 고통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희망상실이 만드는 우울의 깊이
임세원 교수는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해 우울증의 핵심 원인을 희망의 상실로 파악했습니다. 여기서 희망상실(loss of hope)이란 단순히 낙관적 태도를 잃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 자체가 소멸되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 견디기 힘든 병이 찾아왔을 때, 그는 모든 희망을 잃고 지독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저 역시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던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햇살과는 전혀 다른, 차갑고 기계적인 불빛이었습니다. 7살 아이에게 그 공간은 세상 전부였고, 옆 자리 친구가 사라진 후 남겨진 우뢰매 장난감을 보며 느꼈던 공허함은 지금 생각해도 생생합니다. 교수는 환자들이 종종 하던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라는 말의 의미를 그제야 이해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살이 3단계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합니다. 먼저 자살 생각(suicidal ideation)이 시작되고, 이어서 구체적인 자살 계획(suicidal plan)을 세우며, 마지막으로 자살 시도(suicide attempt)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자살 생각이란 죽음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죽음을 떠올리는 인지적 과정입니다. 실제로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 시도자 중 50% 이상이 음주 상태였다는 조사 결과는, 음주가 충동성을 강화하여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주요 촉매제임을 보여줍니다(출처: 중앙자살예방센터).
임세원 교수 본인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자살하려는 구체적 계획을 세웠으나,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시도를 포기했습니다. 이 경험은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이는 순간에도, 연결된 존재들이 우리를 붙잡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통수용과 일상루틴의 치유력
극심한 우울을 겪으며 임세원 교수가 얻은 첫 번째 깨달음은 일상의 루틴 유지였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면 생활 자체가 예측 불가능해집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고 병원으로 출근하는 루틴을 지켰습니다. 저 역시 병원에서 매일 반복되던 일정들이 답답하고 갑갑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예측 가능한 패턴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유일한 안정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고통의 수용이었습니다. 여기서 수용(acceptance)이란 고통을 즐기거나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심리적 과정을 뜻합니다. 고통을 피하려 할수록 고통은 더 커지며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쳐 관계 단절과 자책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고통을 받아들이는 순간, 고통은 그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며 다른 좋은 것들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 번째는 '왜'가 아닌 '어떻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과적 질환에는 명확한 원인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라는 질문에 집착하면 끝없는 자책과 우울의 악순환에 빠집니다. 저도 7살 때 왜 제게 이런 병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왜'에 대한 답을 찾는 것보다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네 번째는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지혜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화살(second arrow)이란 불교 용어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피할 수 없는 고통(첫 번째 화살) 이후에 스스로에게 쏘는 두려움, 걱정, 후회를 의미합니다. 부정적 결말을 상상하는 자신을 인식하고 생각을 멈추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것이 핵심입니다.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취침하는 루틴 구축
-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 부정적 생각이 떠오를 때 "이건 생각일 뿐이다"라고 인식하기
- 좋은 음식, 충분한 휴식, 규칙적인 운동으로 기본 건강 관리
희망의 근거와 인간관계의 회복
임세원 교수는 포로수용소에서 낙관주의자들이 오히려 절망 속에서 죽어갔던 사례를 언급하며, 희망에는 근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단순한 긍정이 아니라 신념, 현실 직시, 인내심, 그리고 '지금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생존의 비결이었습니다. 여기서 신념(belief)이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구체적 행동으로 뒷받침되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저는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 7살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삶과 죽음을 알지도 못할 나이에 그 경계를 넘었던 경험은, 제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재밌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병원에서 보낸 몇 달은 무척 답답하고 갑갑했습니다. 같은 병실 옆자리 친구는 저보다 한 살 어렸고 우뢰매 장난감과 레고를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행동이 제한된 병실에서 서로 의지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주사실에서 주사를 맞고 돌아왔을 때 그 친구가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이별이었습니다. 당시엔 몰랐지만, 제가 퇴원하는 날 흘렸던 눈물은 아마 몸이 먼저 이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고 머리가 커가면서 이별과 죽음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환자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임세원 교수는 과거에 집착하면 우울감이 생기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지만, 모든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현재에 충실하게 살 때 비로소 정상적인 미래가 온다는 것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하며 고립되지만, 존재가 소멸되지 않았다면 다시 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나의 존재 자체가 희망의 가장 분명한 근거입니다.
2018년 환자에 의해 세상을 떠난 임세원 교수의 유족들은 가해자 처벌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 없이 도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후 '임세원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2020년 의사자로 지정되었습니다. 대피할 수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을 경고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선 그의 마지막 선택은, 우리 모두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깊이 연결된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차가운 병상에 누워 쳐다보았던 천장의 형광등은 햇살과는 전혀 다른 불빛이었지만, 그 시간을 견디며 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많은 감정을 가졌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정말 없습니다. 다만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입니다.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반복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지금 고통 속에 있다면,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고 고통을 수용하며, '지금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