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대한민국 거리에는 최루탄 냄새가 일상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 시절 어린아이였지만, 코끝을 찌르는 매운 냄새와 함께 울려 퍼지던 함성 소리를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공식 집계된 사상자만 수천 명에 달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사라졌다고 합니다
([출처: 국가기록원]
(https://www.archives.go.kr)). 그저 대학교 앞 도로를 지나는 것만으로도 제압 소리와 비명이 뒤섞인 광경을 목격해야 했던 시절, 저는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군사정권 시대의 폭압과 민주화 열망
제가 태어난 1981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1년 후였습니다. 여기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맞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벌인 항쟁을 의미합니다.
당시 신군부 세력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공식 기록만으로도 165명이 사망하고 76명이 행방불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희생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5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통치는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의 연속이었습니다. 심리전이란 군사 용어로, 상대방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벌이는 비물리적 전술을 뜻합니다.
1982년 흉년이 들었을 때, 당시 통치권자는 수입한 쌀을 광주역과 대구역에 하역하기 전 트럭에 가득 싣고 시내를 대여섯 바퀴 돌게 했습니다.
국민들에게 "쌀이 넉넉하니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죠. 평시에 자국민을 상대로 이런 기만적 심리전을 펼친다는 것은, 국민을 통제 대상으로 보는 오만한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87년에는 무등산 철거민 사태가 있었고, 같은 해 6월 민주항쟁이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제가 살던 집 근처 대학교 앞 도로는 매일같이 시위와 진압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최루탄 냄새는 집 안까지 들어와 창문을 닫아도 소용없었고, 저는 그 냄새 때문에 밤마다 기침을 했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매운 냄새가 코끝에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 경험은 제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검찰이 5.18 관련 피고인들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던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불기소 처분(Non-prosecution)이란 검찰이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죽은 사람은 분명히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는 이 부조리한 상황은,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던 시대의 민낯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복되는 역사 속 우리의 모습
역사학에서는 '역사의 순환론(Cyclical View of Histor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역사가 직선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패턴을 되풀이한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권력을 손에 쥔 이들이 국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시도는 시대를 달리하며 계속 반복되어 왔습니다.
제가 겪었던 80년대의 상황과 그보다 앞선 시대, 그리고 이후의 시대를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패턴이 발견됩니다. 권력자들은:
-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민을 동원 대상으로 여깁니다
- 반대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진실을 은폐하려 합니다
- 책임을 회피하고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식으로 문제를 덮으려 합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권위주의 정권 시기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의식은 억압받았지만, 오히려 그 반작용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하게 분출되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행정연구원). 제가 어렸을 때 목격했던 그 치열한 항쟁들이 바로 그런 열망의 표출이었던 것입니다.
되새겨보면 무척이나 아프고 슬픈 기억입니다. 저는 당시 어린아이였지만, 매일같이 최루탄 냄새에 고생했고, 통제하고 제압하는 소리와 알 수 없는 비명과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 소리들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절박한 외침이었고 억압에 저항하는 용기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역사를 배우고 기록하며 기억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이란 동물은 역사 속에서 존재하면서도 역사의 교훈을 충분히 내재화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옳은 것은 없는데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늘 같은 일을 꾸밉니다. 그리고 국민과 민초는 그들의 수법을 알면서도 당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특히 뉴스에서 권력 남용이나 역사 왜곡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면, 어린 시절 코를 찌르던 최루탄 냄새가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제 경험상 역사는 단순히 책 속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80년대를 살았던 저로서는, 그 시절의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바람만으로는 역사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고, 그 교훈을 현재에 적용하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끊임없이 감시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그 함성과 비명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참고: https://livewiki.com/ko/content/shin-kyung-sook-lonely-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