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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 하는 여행(카트린 지타)

sudajjeongea 2026. 2. 27. 17:18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은 다르다 – 『혼자 여행하는 이유』를 읽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하루를 본 적이 있다. 저녁이 내려앉은 골목은 유난히 조용했고, 나는 그날의 피로를 천천히 곱씹으며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 문을 나서는 순간에는 하늘이 먼저 보였다. 같은 공간, 같은 길인데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시선은 전혀 달랐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 삶도 그렇겠구나. 여행도 그렇겠구나.

오스트리아 최대 일간지 크로넨 자이퉁 기자로 일했던 카트린 지타는 겉으로 보기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 인정, 커리어.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시원하게 웃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웃지 못하는 삶. 그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방향을 잃어버린 상태가 아닐까.

같은 세상, 다른 시선

우리는 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간다. 출근길에 보는 건물도, 퇴근길에 보는 가로등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어떤 날은 숨이 막히고, 어떤 날은 괜히 마음이 가벼워진다. 공간이 달라서가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카트린 지타가 선택한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 철저히 혼자인 여행. 그것은 단순히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기대와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는 선택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장소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시선을 바꾸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우선순위에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타인의 기대를 나의 자유 의지보다 앞세우는 삶.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종종 ‘해야 하는 일’에 쫓기며 ‘하고 싶은 일’을 미뤄둔다. 그렇게 하루가 쌓이고, 어느 날 문득 웃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혼자 여행의 자유와 책임

혼자 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구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머무르고 싶은 곳에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걷고 싶지 않은 날에는 쉬어도 된다.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배가 고프면 먹고,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히 바꿀 수도 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자유는 생각보다 크다.

그러나 자유는 언제나 책임을 동반한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스스로를 통제해야 한다. 늦잠을 자도 깨워줄 사람이 없고, 길을 잃어도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 불안이 밀려와도 결국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동시에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여행이 인생과 닮았다고 느꼈다. 우리는 결국 혼자 선택하고, 혼자 책임지고, 혼자 성장한다.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는 있지만, 내 삶의 방향을 대신 정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 속에서, 자연 속에서, 다름 속에서

여행은 꼭 멀리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낯선 도시의 풍경이 아니어도 좋다. 사람들 속에서, 자연과 함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마주하는 순간에도 여행은 시작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익숙함을 잠시 내려놓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여행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카트린 지타는 50개국을 여행하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갔다. 여행이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녀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심리 코칭을 공부하기 시작한 선택 역시, 충동이 아니라 충분한 성찰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재정렬이다. 잠시 멈추어 삶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다. 나는 그 문장을 마음속에 오래 두고 싶었다. 우리는 쉬지 않고 달리느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한 번쯤 멈추어 서서 묻는다면 어떨까. 나는 지금 어디로 들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하늘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우리가 고개를 들지 않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하루를 보고, 집을 나서는 순간 하늘을 본다는 것은 결국 시선의 문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같은 세상 속에 있지만,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혼자 여행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에도 배울 점은 많다. 그러나 적어도 한 번쯤은 혼자 걸어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타인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타인의 기대를 짊어지지 않은 채, 오롯이 나의 호흡으로 걷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어쩌면 여행의 목적지는 특정한 도시가 아니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사람 속에서, 자연 속에서, 수많은 다름과 마주하며 나 자신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과정. 그것이 곧 여행이고, 동시에 삶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같은 길을 걷는다. 그러나 어제와 다른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다르듯, 여행을 떠나기 전과 돌아온 후의 나는 조금 다를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세상 속에서,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