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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폐암 4기, 신경외과 의사, 죽음 앞 성찰)

sudajjeongea 2026. 3. 7. 04:10

숨결이 바람 될 때 (폐암 4기, 신경외과 의사, 죽음 앞 성찰)

36세 신경외과 의사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CT 정밀검사 화면에는 폐 전체를 뒤덮은 무수한 종양, 척추 변형, 간 전이 소견이 또렷했습니다. 저 역시 1987년 선천성 심장판막증으로 어린 시절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적이 있기 때문에, 병이라는 게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꿔놓는지 압니다. 다만 제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면, 폴 칼라니티는 자신의 마지막 2년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의사에서 환자로,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폐암 4기 진단

폴은 레지던트 과정 막바지에 극심한 요통과 체중 감소를 겪었습니다. 신경외과 전문의 과정을 밟던 그는 처음엔 척추 찰리증 정도로 자가 진단하며 버텼습니다. 여기서 척추 달리증이란 척추뼈가 제자리에서 어긋나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신경외과에서 흔히 접하는 증상입니다. 하지만 흉부 통증, 밤샘 땀, 지속적인 기침이 더해지며 그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정식 진단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폴은 자신이 수백 번 환자를 진료했던 그 진찰실에, 이번엔 환자로 앉아 있었습니다. 간호사가 "의사선생님께서 곧 오실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폐암 4기는 의학적으로 '전이성 암종(metastatic carcinoma)'에 해당하는데, 이는 암세포가 원발 부위를 넘어 다른 장기로 퍼진 상태를 뜻합니다(출처: 국가암정보센터). 저 역시 어린 시절 심장 수술을 받기 전, 어머니가 지나가는 의사를 붙잡고 하염없이 우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느꼈을 절박함을, 이제 폴은 환자의 입장에서 직접 겪고 있었던 겁니다.

 

폴의 종양학 전문의 엠마 헤이워드는 세계적 권위자였지만, 그녀조차 명확한 예후를 단언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현재의 치료 계획과 복직 가능성에 집중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폴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36시간 연속 수술을 버텼던 자신이, 이제는 지팡이와 개량 좌변기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힘든 병약자가 되었음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자 그의 몸은 급격히 쇠약해졌고, 재정 계획도 위태로워졌습니다.

 

말기암 환자가 겪는 주요 신체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체중 급감과 근육 소실(악액질, cachexia)
  • 만성 통증으로 인한 일상 기능 저하
  • 호흡 곤란 및 산소 포화도 감소
  • 극심한 피로감과 무기력증

죽음 앞에서 선택한 삶, 그리고 딸 케이디의 탄생

폴은 암 선고 후에도 다시 수술실로 복귀했습니다. 최고참 레지던트로서 엄청난 업무량을 소화하며, 자신이 여전히 '의사'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겁니다. 동시에 아내 루시는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인공수정(IUI, Intrauterine Insemination)이란 배란 시기에 맞춰 정자를 자궁 내에 직접 주입하는 시술로, 자연 임신이 어려운 부부들이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폴 부부가 얼마나 간절히 희망의 끈을 붙잡고 싶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지던트 수료를 앞두고 암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폴은 결국 의사의 길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는 사경을 헤매다가 딸 케이디가 태어나는 순간을 맞이했고, 태어난 지 8개월 후 소생 치료를 거부한 채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습니다. 폴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책의 에필로그는 아내 루시가 대신 집필했습니다(출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

 

저는 최근 몇 년 전 췌장암으로 지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췌장암은 '암의 왕'이라 불릴 만큼 5년 생존율이 12% 남짓에 불과한 무서운 병입니다. 그분이 세상을 떠날 때, 저는 병으로 인한 죽음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폴 역시 자신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너무나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고통은 더욱 극심했을 겁니다. 그는 아내에게 "죽고 싶지 않아"라고 토로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홀로 남겨둘 두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병과 싸우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 경험상 그건 '간절함'과 '주변의 도움'입니다. 저는 1987년 당시 국가 지원 제도 덕분에 심장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어린이 최초 심장 수술 생존 사례로 신문에 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함, 그 의사분의 도움, 국가의 제도가 모두 맞물려 저는 지금 한 가정의 가장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폴은 최선의 의료진과 가족의 사랑 속에서도 결국 암을 이기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기록은 수많은 사람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선물했습니다.

 

폴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병이 단순히 육체적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정체성의 상실, 관계의 변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병은 한 사람의 존재 전체를 흔듭니다. 그럼에도 폴은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쓰고, 딸의 탄생을 목격하고, 아내와 사랑을 나누며 자신의 삶을 최대한 의미 있게 채웠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마지막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병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고요하게 눈을 감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축복일 겁니다.


참고: https://livewiki.com/ko/content/breath-becomes-wind-doctor-audiobook